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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예정일에, 우리 집 벽을 다시 뜯었다

센터장의 빌더 일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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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집이 스스로를 고쳤다.

새벽에 스크립트 하나가 돌았다. 스마트홈 허브의 인증 토큰이 만료되기 열두 시간 전이라는 걸 확인하고, 알아서 갱신하고, 설정을 백업하고, 서버를 재시작하고, 정상 작동을 검증한 다음, 텔레그램으로 결과를 보고했다. 전부 15초.

이 토큰은 30일마다 만료된다. 만료되면 집 안의 조명과 스위치와 커튼이 통째로 죽는다. 지난 다섯 달 동안 두 번 겪었다. 그래서 사람이 알아채기 전에 집이 먼저 고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여덟 달 전에 다 끝난 공사의 벽을 다시 뜯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칸이 마지막이 아니게 된 날

작년 겨울, 구축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집을 전부 뜯어고쳤다. 11월 초에 시작해서 12월 10일에 공사 완료하는 일정이었다.

지금도 그때 공정표를 갖고 있다. 12월 10일 칸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날이 끝이니까.

그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기공사 (중성선)

11월 17일에 이미 끝나고 철수했던 전기 팀이, 입주 예정일에 다시 왔다. 그리고 닫아놓은 벽을 다시 열었다.

diagram-1-timeline

왜 그랬는지 적어두려 한다.

11월 28일 —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공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처음으로 AI에게 우리 집 도면을 보여줬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냥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렇게 고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들어간 공정이 순서가 맞는지,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그러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스위치 자리마다 중성선을 넣어두라고.

설명은 이랬다. 구축 아파트의 스위치 박스에는 전원선 하나만 들어와 있다. 스마트 스위치는 스스로 통신하기 위해 상시 전원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중성선이 있어야 한다.

없다고 아예 못 다는 건 아니다. 다만 무선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와이파이 스위치는 끊김이 잦고 배터리형은 몇 달마다 건전지를 갈아야 한다. 결국 두고두고 번거로워진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 배선은 벽을 닫기 전에만 넣을 수 있다.

그날이 11월 28일 금요일이었다. 공정표상 도배는 12월 5일. 벽이 닫히기까지 정확히 일주일 남아 있었다.

현장 실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제가 뒤늦게 확인했는데, 집을 IoT 환경으로 구축하려다 보니 스위치 박스에 중성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직 도배 전이니, 전기 공정 들어올 때 각 방과 거실 스위치 박스에 중성선 입선 작업 추가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 추가 비용 발생하면 알려주세요. 진행하겠습니다.)

답장은 이랬다.

중성선은 아니고 접지선은 전열 콘센트에는 대부분 기존에 들어있습니다. 조명 배선에는 없습니다. 배선교체 공사가 없어 기존 회로로 사용합니다. 저희는 단상2선식입니다.

없다는 뜻이었다.

반대는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일정이었다. 이미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고, 벽을 다시 까면 기간이 늘어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도배와 바닥 공사를 멈추게 했다. 일정을 뒤로 밀었다. 추가 비용은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능력이었다. 중성선을 넣더라도 그 위에 붙일 스마트 스위치 공사는 자기들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할 줄 모른다고.

세 번째가 가장 정확한 경고였다.

IoT 장비는 오류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전문가를 부르셔야 할 텐데, 저는 그쪽 전문이 아니라서 인건비만 더 나올 겁니다.

이 말은 나중에 사실로 밝혀진다. 뒤에서 다시 나온다.

그래서 전문 업체를 알아봤다

IoT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 몇 군데에 견적을 물었다. 공사가 진행 중이니 여기에 IoT 설정까지 얹어달라고.

돌아온 숫자는 수천만 원 단위였다.

한참을 봤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안 되겠다. 내가 해야겠다.

이게 내가 빌더가 된 순간이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견적서를 보고 포기해서였다.

"결선만 해주세요"

실장님이 선을 그었다. 하드웨어를 붙일 수 있는 전선까지만 하겠다고. 그 위는 다른 업체를 부르라고.

다른 업체를 부를 돈이 없었으므로,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스위치는 내가 직접 골라서 직접 주문했다. 집으로 배송시켰다. 그리고 실장님께는 이렇게만 부탁했다.

결선만 해주세요. 안 되면 제가 책임집니다.

이 문장을 그 겨울에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무엇을 살지, 어떤 규격이 맞는지, 배선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는 전부 AI에게 물어가며 공부했다. 실장님은 IoT를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정통 인테리어 시공자였고, 그건 잘못이 아니다. 그냥 다른 일이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전기 사장님이 결선하다가 스위치 하나를 태워먹었다. 내가 다시 사서 넣었다. 안 되면 내가 책임진다고 했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문제

가장 어려웠던 건 난방이었다.

아파트 난방은 온도조절기와 구동기라는 부품이 짝을 이뤄 동작한다. 우리 집 구동기는 오래된 물건이었고, 여기에 각 방마다 스마트 온도조절기를 붙이려면 둘이 전기적으로 맞아야 했다.

실장님은 구동기는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직접 알아보라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IoT 되는 온도조절기를 달려는데 우리 집 구동기가 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업체를 알려준단다.

구동기 유지보수 업체를 불렀다. 그쪽은 구동기는 알지만 스마트 조절기는 몰랐다.

그래서 제품 설명서를 구했다. 영어였다. AI에게 전부 번역시켰다. 규격을 읽고, 배선도를 이해하고, 우리 집 상황에 맞는지 대조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내가 사장님들에게 설명했다.

어느 날 업체에서 이런 메시지가 왔다.

배선연결을 알아야될 거 같습니다.

조절기에 6구멍이 있는데 선을 어디다 넣어야 되는지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빨간색이 L, 흰색이 N, 검정과 파랑이 구동기, 녹색이 접지. 1번은 Open, 2번은 L, 3번은 N, 4번은 비워두고 절대 연결하지 마세요.

전기를 모르는 내가, 전기를 잘 아는 사람에게, 번호를 매겨서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허브였다, 다만 비동기로만

이 구조가 작동한 건 순전히 카톡이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질문을 보낸다. 나는 그걸 복사해서 AI에게 붙여넣는다. 답이 오면 내 말로 바꿔서 다시 보낸다. 느리지만 굴러갔다. 나는 사람과 AI 사이에 앉은 중계기였다.

전화가 오면 이 프로세스는 즉시 먹통이 됐다.

수화기 너머에서 지금 당장 답을 요구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 겨울에 이 말을 여러 번 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요. 궁금한게 그거였죠? 조금 뒤에 답변드리겠습니다."

회의 중이 아니었다. 끊고, AI에게 묻고, 오 분쯤 뒤에 다시 걸었다.

그때 계속 생각한 게 있다. 통화하는 동안 옆에서 지금은 이렇게 답하라고 알려주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대화가 끝난 뒤가 아니라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여덟 달이 지났고, 아직 없다.

음성으로 AI와 대화하는 건 이제 누구나 한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걸 곁에서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거들어주는 건 여전히 없다. 기술이 어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남의 통화를 실시간으로 듣는 물건이라 만드는 쪽이 감당할 게 너무 많다. 1화에서 옷장 이야기를 하며 적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다.

그래서 이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나는 그때 이미 반쪽은 만들어뒀다. 통화 녹음을 자동으로 받아서 텍스트로 바꾸고 AI가 분류해 정리하는 파이프라인. 다만 그건 통화가 끝난 뒤에 도는 물건이다.

끝난 뒤가 아니라 도중에 도는 것. 그게 아직 내가 못 만든 것이고, 아직 아무도 안 만든 것이다.

diagram-3-async

그런데 AI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만 쓰면 "AI가 다 해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배선을 물었을 때 AI가 먼저 경고한 게 있다.

색상 구별은 절대 맹신하지 마세요. 시공자가 규격과 다르게 썼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나중에 우리 집 온도조절기가 220V가 아니라 저전압 방식이라는 걸 현장에서 확인했다. 만약 도면과 색상만 믿고 연결했으면 연결하는 순간 태워먹었을 것이다.

AI는 방향을 줬다. 현장은 그 방향이 맞는지 검증했다. 판단은 내가 했다.

셋 중 하나만 빠져도 그 겨울은 다르게 끝났을 거다.

diagram-2-verification

12월 16일 저녁 여섯 시 사십칠 분

공정표를 보면 그날은 조명공사와 현관 하드웨어 작업이 잡혀 있다. 난방 결선은 없다. 전기 팀은 12월 11일에 이미 철수했다.

그런데 그 시각에 나는 드라이버를 들고 온도조절기 앞에 앉아 있었다.

업체가 다 돌아간 뒤, 아무도 없는 새 집에서 혼자 하고 있었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AI를 불렀다. 돌아온 첫 마디는 배선 설명이 아니었다. 차단기부터 내렸는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감전되니 조심하라고.

그 겨울 전체에서 가장 조용했던 장면이다.

12월 20일 — 열흘 늦게 끝났다

원래 12월 10일 완공이었다. 실제 입주청소는 12월 20일이었다.

열흘 늦어졌다.

공기가 늘어나면 인건비가 붙는다. 이미 철수했던 전기 사장님을 다시 부른 값도 따로 들었다. 처음 카톡에 적었던 그 문장,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알려달라고 했던 그건 수사가 아니었다.

실장님이 처음에 한 말이 옳았다. 벽을 다시 까면 기간이 늘어난다고 했고, 정말 늘어났다.

내가 이긴 게 아니다. 대가를 미리 알고, 그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그 차이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oT 첫 번째 보상은 베이크아웃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로한 집은 입주 전에 베이크아웃을 한다. 난방을 최대로 올려 자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뿜어낸 다음 환기하는 걸 여러 번 반복하는 작업이다. 원래는 사람이 집에 가서 보일러를 올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가서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때 우리 가족은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임시 거처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집 소파에 앉아서, 폰으로 새 집 난방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IoT가 연결되면 사람이 편해진다는 것을.

내가 거기 없어도 집이 일한다.

잡은 것과 놓친 것

정직하게 적자면, 그 겨울에 완벽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거실 실링팬과 주방 후드는 IoT가 안 되는 제품을 샀다.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고, 알았을 땐 이미 사서 달아놓은 뒤였다. 지금도 그 둘만 리모컨으로 켠다. 볼 때마다 아쉽다.

그 열 주 동안 내가 배운 건 스마트홈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안 하면 영영 못 하는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 그게 같이 남았다.

중성선은 벽을 닫으면 끝이었다. 실링팬은 사면 끝이었다. 둘 다 그 순간엔 사소해 보였고, 하나는 잡았고 하나는 놓쳤다.

그리고 어제

여덟 달이 지났다.

그 벽 안의 전선 위에 스위치가 붙었고, 스위치 위에 센서가 붙었고, 그 위에 자동화가 스물아홉 개 올라갔다. 어제는 그중 하나가 스스로를 고쳤다.

실장님은 지금도 가끔 연락한다. 이런 거 하는 데 총 얼마 들었냐고 묻고, 혹시 같이 사업할 생각 없냐고도 했다.

나는 못 하겠다고 했다. 해보면 알겠지만, 아직 이쪽은 오류가 많다. 오류 난 집마다 불려 다닐 자신이 없다.

그 말을 하고 여덟 달 뒤에, 나는 집이 스스로 고치게 만드는 걸 짓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보니 이제 부캐를 돌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동안 했다.


다음 글에선

쓰고 보니 두 편 연속 집 이야기다. 원래 의도는 회사 일도 같이 적는 거였는데, 결국 내가 AI를 가장 깊게 쓴 자리가 집이었다. 다음 편만 조금 더 여기 머물다 가려 한다.

집 안에 허브가 세 개 있었다. 스위치는 한 회사 제품이고, 센서는 일부가 다른 회사 제품이었다.

각각 켜고 끄는 건 됐다. 그런데 센서가 사람을 감지해도 화장실 불이 자동으로 켜지지는 않았다.

둘 다 우리 집에 있는데 서로 말을 안 하는 상황. 1화에서 음성 비서와 캘린더가 서로 안 만나던 이야기를 썼는데, 같은 일이 이번엔 벽 안에서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묶었는지가 다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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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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